혁신적 강의란?
혁신적 강의는 내 강좌를 세상에 공개함으로 시작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수업에 들끓도록 하자.
소통과 나눔의 무대
제1회 소나무. 소통으로 찾은 행복. 2012년 3월 23일
창의성
연결만 잘 시켜도, 창의적인 생각은 차고 넘친다.
생태계
기업을 살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게 하는 것
TRUST
TRUST = Tree Roots Using Social Technology. 울 연구실 로고다.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부르심, 되기, 그리고 하기
Jesus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called to him those he wanted, and they came to him. He appointed twelve -- designating them apostles -- that they might be with him and that he might send them out to preach and to have authority to drive out demons. (Mark 3:13-15)
부르심(calling)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3절)

그분은 항상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해가 시작되듯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분의 계획에 우리가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되기(to be)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14절)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고 사는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무엇에 마음이 동하는지, 그 무엇이 내가 되기 원하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를 부르셨던 그분은 내가 그분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하신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기(to do)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14-15절)

이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기쁜소식을 알리자. 더 이상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에 무릎꾸를 필요가 없다. 해방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권세를 부여 받았다. 더 이상 우리를 속이는 세상의 가치에 눌리자 말자. 우습게 여기자.
2011년 6월 20일 월요일
두나라 이야기(나훔 1:1-8)
앗시리아의 땅 니느웨에 간 두 선지자가 있었다.
요나.. 민족의 아픔이 있었기에 원수의 땅에 회개를 촉구하러가는 것은 너무나도 싫었지만, 운명과도 같이 어쩔수 없기 적진으로 들어갔다. 도시락 폭탄대신 회개의 외침... 니느웨 백성은 한마디 선지자의 외침에 회개를 했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100년뒤, 동일한 장소에 나훔 선지자가 다시 찾아가서 회개를 촉구했으나, 후손들은 거절했고 결국 니느웨 백성들은 심판을 받게 되었다.
100년전, 조선땅은 회개운동과 영적부흥이 있었던 땅이다.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은 부패함과 썩어짐만이 넘치는 땅으로 변모해 있다.
역사의 패턴이 반복된다면, 우리의 길은 자명하다.
새로운 회개운동.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이다.

요나.. 민족의 아픔이 있었기에 원수의 땅에 회개를 촉구하러가는 것은 너무나도 싫었지만, 운명과도 같이 어쩔수 없기 적진으로 들어갔다. 도시락 폭탄대신 회개의 외침... 니느웨 백성은 한마디 선지자의 외침에 회개를 했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100년뒤, 동일한 장소에 나훔 선지자가 다시 찾아가서 회개를 촉구했으나, 후손들은 거절했고 결국 니느웨 백성들은 심판을 받게 되었다.
100년전, 조선땅은 회개운동과 영적부흥이 있었던 땅이다.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은 부패함과 썩어짐만이 넘치는 땅으로 변모해 있다.
역사의 패턴이 반복된다면, 우리의 길은 자명하다.
새로운 회개운동.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이다.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데라와 나오미
1. 데라 이야기 (창 11:31-32)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그분의 부르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중심부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 거점 도시인 하란에 머문다. 더 이상은 그분의 계획하심이 성취되지 않고 하란 땅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성경기자의 기록은 냉정하다. 그분의 부르심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지체되고 결국 그 사역이 멈추게 되자 더이상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하란성)
2. 나오미 이야기 (룻 1:1-18)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자, 세속적이었던 나오미 가족은 이민(모압)을 결정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근이나 전쟁은 그분의 징계이다. 이때 해결책은 단 한가지, 회개이다. 하지만, 나오미 가족은 피해버린다. 오히려 이방문화의 땅으로 도망가 버린다. 그땅은 그노스신을 섬기는 땅이다. 그분의 임재를 피해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한 처세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남편과 두아들이 죽고만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때 그분과 대면하게된다.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자" 이런 단호한 결정에 이방인이었던 며느리 룻도 그분을 대면하게 된다.

(모압신 그노스)
3. 우리 이야기
부르심으로 시작된 삶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직면하자, 그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데라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본다.
반대로 세속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분을 알게되고 삶이 송두리채 바뀌게도 된다.
나오미의 경우, 그녀가 그분께 엎드리자, 이방여인인 며느리도 그분을 알게 되었고, 결국 며느리를 통해 위대한 다윗의 계보가 시작되었다.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인 결정은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결정을 하고 있는가? 나로 말미암아 믿음의 계보가 시작되는 것을 나는 소망하는가? 아니면 부르심이 있었는데 다소 지쳤다고 쉬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의 쉼이 영원한 쉼으로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그분의 부르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중심부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 거점 도시인 하란에 머문다. 더 이상은 그분의 계획하심이 성취되지 않고 하란 땅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성경기자의 기록은 냉정하다. 그분의 부르심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지체되고 결국 그 사역이 멈추게 되자 더이상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하란성)
2. 나오미 이야기 (룻 1:1-18)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자, 세속적이었던 나오미 가족은 이민(모압)을 결정한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근이나 전쟁은 그분의 징계이다. 이때 해결책은 단 한가지, 회개이다. 하지만, 나오미 가족은 피해버린다. 오히려 이방문화의 땅으로 도망가 버린다. 그땅은 그노스신을 섬기는 땅이다. 그분의 임재를 피해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한 처세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남편과 두아들이 죽고만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때 그분과 대면하게된다.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자" 이런 단호한 결정에 이방인이었던 며느리 룻도 그분을 대면하게 된다.

(모압신 그노스)
3. 우리 이야기
부르심으로 시작된 삶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직면하자, 그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데라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임재하심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본다.
반대로 세속적인 삶을 살았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분을 알게되고 삶이 송두리채 바뀌게도 된다.
나오미의 경우, 그녀가 그분께 엎드리자, 이방여인인 며느리도 그분을 알게 되었고, 결국 며느리를 통해 위대한 다윗의 계보가 시작되었다.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인 결정은 위대한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결정을 하고 있는가? 나로 말미암아 믿음의 계보가 시작되는 것을 나는 소망하는가? 아니면 부르심이 있었는데 다소 지쳤다고 쉬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의 쉼이 영원한 쉼으로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God of Salvation
"Jews demand signs and Greeks look for wisdom,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but to those whom God has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1 Col. 1:22~24)
유대 사람들은 표적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십자가를 제시하자 대부분 부담스러워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요구했다. 이들에게 십자가를 제시하자 바보같은 짓이라고 무시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해하랴.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자 지혜인 것을...
많은 기독교인들은 고난이라는 말은 부담스러워하고, 축복과 성공에만 관심을 둔다. 모든것을 드리라는 메시지는 인기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세상사람들은 기독교교리는 신화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지않는 종교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슨 다른 선택이 있겠는가....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의 방법인 것을.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학부모의 불안은 우리의 불안이다.
오후 9:59
교육, 귀농, 귀촌, 기독교, 기독교대안학교, 김인수, 대안학교, 대학, 맘몬, 민들레, 민들레고등학교, 민들레공동체, 민들레중학교, 민들레학교, 사도행전, 산청, 인터콥, 자본주의,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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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아빠가 글을 쓰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력도 있었지만, 민들레 70호를 읽고 들은 생각이 있어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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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민들레 고등학교 설명회에서 교장선생님의 계획과 아울러 대학이후의 삶와 진로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깊히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민고에 보내고, 도제과정을 이수하거나 민들레 대학까지 보낸뒤 대안기업까지 경영하면, 완벽한 민들레공동체인으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과는 타협하지 않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며 살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민들레 교육시스템에 대한 마스터 플랜은 분명히 듣는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왔고, 흥분케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찍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하면 우리가 행복할까?" "우리는 세상의 맘몬(자본주의)체제에 눌려사는데, 자녀에게만 피할 길을 제공해 주면 우리는 죽어도 된다는 것일까?"
우리는 대안교육의 필요성 때문에 이 학교에 왔지만, 대안사회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해 본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교육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우리는 그냥 세상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곳에 온것은 아니라 봅니다. 세상 교육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또 다시 이세상을 만들고 있기에, 우리가 키워나가는 자녀들도 대안 세상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봅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세상을 향해 과감히 짱돌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기술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두렵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렇게 멋있게 자라났는데, 정작 민들레 학교에 보낸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며 눈치보는 삶을 여전히 살게 되면 어떻하지요?! 그러기에, 우리 학부모도 대안의 세상을 꿈꾸며,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 모두가 무엇이든 공유하면서, 멋진 화합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팔아 공동 자원으로 이용하면서,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웠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서 식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식사 때마다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축제였다"(사도행전 2장 후반부, 메시지 번역판)
몇몇 학부모들 중에는 민들레의 일원이 되거나, 귀농을 준비하고 계신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 역시 민들레의 선한 영향력에 의해 이런 결정을 내리신것 같습니다. 저는 이분들과 함께 대안의 인생에 대해 함께 꿈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중에 지수가 성인이 되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수야, 너는 이제부터 나의 동역자다. 이 세상에 함께 짱돌을 던져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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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민들레 고등학교 설명회에서 교장선생님의 계획과 아울러 대학이후의 삶와 진로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깊히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민고에 보내고, 도제과정을 이수하거나 민들레 대학까지 보낸뒤 대안기업까지 경영하면, 완벽한 민들레공동체인으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과는 타협하지 않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며 살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민들레 교육시스템에 대한 마스터 플랜은 분명히 듣는 우리에게 매력으로 다가왔고, 흥분케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찍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하면 우리가 행복할까?" "우리는 세상의 맘몬(자본주의)체제에 눌려사는데, 자녀에게만 피할 길을 제공해 주면 우리는 죽어도 된다는 것일까?"
우리는 대안교육의 필요성 때문에 이 학교에 왔지만, 대안사회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해 본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교육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우리는 그냥 세상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곳에 온것은 아니라 봅니다. 세상 교육에서 길러진 아이들이 또 다시 이세상을 만들고 있기에, 우리가 키워나가는 자녀들도 대안 세상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봅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돌팔매질을 했듯이 우리의 자녀들도 세상을 향해 과감히 짱돌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기술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두렵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이렇게 멋있게 자라났는데, 정작 민들레 학교에 보낸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며 눈치보는 삶을 여전히 살게 되면 어떻하지요?! 그러기에, 우리 학부모도 대안의 세상을 꿈꾸며,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 모두가 무엇이든 공유하면서, 멋진 화합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팔아 공동 자원으로 이용하면서,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웠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서 식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식사 때마다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축제였다"(사도행전 2장 후반부, 메시지 번역판)
몇몇 학부모들 중에는 민들레의 일원이 되거나, 귀농을 준비하고 계신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 역시 민들레의 선한 영향력에 의해 이런 결정을 내리신것 같습니다. 저는 이분들과 함께 대안의 인생에 대해 함께 꿈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중에 지수가 성인이 되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수야, 너는 이제부터 나의 동역자다. 이 세상에 함께 짱돌을 던져보자꾸나"